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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 회사의 영업관리직 사원으로 일하는 이현아(26) 씨에게는 최근 새로운 수식어가 하나 생겼다. 얼마 전 결성된 직장인 밴드의 보컬리스트 이현아. 그녀가 활동하게 된 밴드는 다음카페 꼼지락밴드(cafe.daum.net/ggomjirock)에서 결성된 세번째 밴드로 아직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직장인 밴드인 꼼지락밴드의 팬모임에서 출발한 꼼지락밴드 카페는 이른바 ‘직장인 밴드 양성소’로 벌써 미소년, 난공불락(難攻不rock) 등의 밴드가 결성되어 클럽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새 밴드의 첫 합주가 있던 날, 화양동 상가건물 지하에 위치한 합주실을 찾았다. 저녁 9시 웃음소리가 간간이 뒤섞인 Sixpence None the Richer의 ‘Kiss me’가 신명나게 흘러나온다.
합주실에서 악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넥타이 차림의 제조업체 과장, 30대 초반의 IT업계 대리, 프리랜서 영상작가 등등. 밴드 구성원이 들쭉날쭉이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과장도, 대리도 아닌 ‘기타리스트’ ‘드러머’ ‘보컬’일 뿐이니까.
대학 시절 교회에서 반주를 했던 것 외에 음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는 이현아 씨는, 요즘 사는 재미가 있다. 회사에서도 표정이 밝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매일 웃는 낯이라고 동료들이 부러워한다.
퇴근 후의 시간이 충실해지면서 다시 나를 되찾은 것 같고, 직장생활에도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입사와 동시에 취미나 꿈을 접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원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씨의 밴드 활동 예찬론이다.
2030세대, 직장에 목매는 삶은 싫다
밴드뿐 아니라 스키, 요가, 라틴댄스 등 레저, 요리나 마술 등 실용취미, 자기계발을 위한 외국어, 경영, 마케팅, 처세술 학습 등. 이씨뿐 아니라 많은 직장인이 퇴근 후 회사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새로운 취미와 자기계발,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의 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인 건강과 여유를 중시하는 웰빙 트렌드와 주5일제 근무의 확산 속에 넥타이 부대가 변모하고 있다. 변화의 중심은 문화적 풍요를 누리고 자란 20, 30대 직장인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지금, 반복되는 직장 업무와 상사와 동료가 인간관계의 전부인 갑갑한 조직생활에 온몸을 투신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퇴근 후나 주말에 즐기는 취미생활, 그를 통한 자아실현이 더 중요한 생활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자아실현을 위한 취미생활에는 대부분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운좋게도 취미생활이 투잡스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IBM에서 IT 컨설턴트로 일하는 김민수(30) 씨. 3년차 직장인인 그는 곧 장편소설 ‘미루마치’로 데뷔한다. 입사 전부터 꾸준히 써온 미루마치는 삼국시대 대야성 전투를 무대로 한 역사 팬터지 소설이다.
퇴근 후는 미래 위한 투자 시간
2030세대 직장인들의 변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인터넷이다. 각종 인터넷 동호회와 블로그에서의 활동이 자신을 위한 투자의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동호인 모임을 통해 밴드에서 활동하게 된 이현아 씨나, 인터넷 연재를 통해 작가로 데뷔하게 된 김민수 씨도 이런 케이스에 해당된다.
다음카페(cafe.daum.net)에는 ‘직장인’이라는 명칭이 붙은 동호회만도 1천6백개에 이르고, 블로그인(www.blogin.com)이나 각종 포털의 블로그에서도 개성 넘치는 직장인들의 블로그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콘텐츠 매니저 조희제 씨는 “직장인 관련 동호회가 작년보다 70% 이상 늘어났다”며 “직장인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기 경영이나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생산적인 모임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런 관심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생직장을 신봉하며 살아온 40, 50대 직장인들은 이런 후배들의 변화를 부러움 반, 시샘 반 바라본다. 유통업체에서 20년 간 근무한 황용진(42) 씨는 ‘퇴근시간만 되면 학원이나 인터넷 동호회 모임에 간다며 훌쩍 나가버리는 후배들을 볼 때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한 게 솔직한 심정이다. 20년 간 근무하면서 눈치보느라 휴가도 다 써본 적이 없는데, 후배들은 다르다. 회사나 인생에 대한 태도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시각과는 달리 20, 30대는 단순히 인생을 즐기기 위해 퇴근을 기다리는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 동호회나 블로그의 활동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자기계발이나 자기 경영을 위해 투자하는 이들도 많다.
무역업체에 근무하는 홍정옥(29) 씨는 얼마 전부터 퇴근 후 중국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중국어를 전공하고 1년 간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는데, 크게 쓸 일이 없어지면서 언어감각이 둔해진 것이 아쉽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취미 삼아 블로그에 중국어 노래가사도 연재해 볼 생각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인터넷을 이용해 본격적인 공부에 돌입한 이들도 있다. 한국디지털대학교(www.koreadu.ac.kr)의 경우 직장인 비율이 80%를 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대부분은 20, 30대 직장인들이다. 선호 전공도 디지털정보학과, 미디어디자인학과, 실용외국어학과, 부동산정보학과 등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학과들.
한국디지털대학 홍보담당 김명희(26) 씨는 “빡빡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3년 만에 졸업하는 조기졸업자도 있다”고 밝혔다. 이들 사이버 대학교의 직장인 겸 대학생들은 MP3로 녹음해 출퇴근 시간에 강의를 청취하고, 3시간 미리 출근해 공부하는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있다.
미래의 자신을 위해, 혹은 현재의 자신을 위해 자아 실현과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2030세대 직장인들에게 이제 넥타이 부대라는 별명은 걸맞지 않다. 올 한 해를, 넥타이 부대에서 개성과 실력을 갖춘 ‘나’로 변신하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
장재현 본지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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